[뉴스토마토 홍연·이수정 기자]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차정훈 한국토지신탁 회장이 압수수색 약 두 달 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등기이사직은 사임했지만 사내 최고 수준의 보수와 ‘중장기 전략 수립’이라는 핵심 권한은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어 '사법 리스크 회피용 꼼수 사임'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차 회장은 지난 3월26일 '일신상의 사유'로 사내이사직에서 사임했고, 같은 날 임시 이사회에서 미등기임원(회장)으로 위촉됐습니다. 2015년부터 사내이사로 재직해 온 차 회장의 미등기 회장 임기는 2029년 3월까지이며, 담당 업무는 '중장기 전략경영계획 수립'으로 공시됐습니다.
이 같은 직위 변동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던 시점과 맞물립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 김진용)는 지난 5월2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차 회장의 자택과 본사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차 회장은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의혹을 받고 있으며, 검찰은 횡령 금품이 강원랜드 도박자금 등으로 흘러간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수사는 금융감독원이 2024년 5월 한국토지신탁·한국자산신탁 등 양대 신탁사 대주주·임직원의 불법·불건전 사익 추구 행위를 적발해 검찰에 의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검찰은 한국자산신탁 전 임직원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차 회장 관련 정황을 포착해 그해 7월 수사에 착수했고, 한자신 임직원들은 그해 11월 기소했으나 차 회장에 대해선 별도 처분 없이 수사를 이어왔습니다. 재판에 넘겨진 한국자산신탁 전직 임직원 3명은 분양대행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약 1년 10개월간 수사가 진행되던 중 차 회장이 강제수사를 두 달 앞두고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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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훈 한국토지신탁 회장. (사진=한국토지신탁)
차 회장 개인 보유 지분은 0.06%(14만8368주)에 불과합니다. 다만 대량보유보고서상 최대주주인 엠케이인베스트먼트(24.25%)와 특별관계자인 엠케이전자(11.21%) 등을 포함한 최대주주 측 우호지분은 35.73%에 달합니다. 차 회장은 현재 오션비홀딩스, 신성건설, 엠케이전자, 엠케이인베스트먼트 등 주요 계열사에서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사측 "경영 관여 안 해" vs 공시엔 "전략 수립 총괄" 온도차
회사 설명과 공시 사이에는 온도차가 감지됩니다. 최윤성 한국토지신탁 대표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차 회장의 경영 참여 여부를 묻자 "미등기인데 경영에 뭘 관여하겠느냐", "직접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바 없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반면 차 회장의 담당 업무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의 '회사 업무 총괄'에서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선 '중장기 전략경영계획 수립'으로 바뀌어 오히려 구체화됐습니다.
회사 측은 미등기 전환에 대해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 체제 확립을 위해 이전부터 준비해 온 조치"라면서도 "전략 수립 과정의 역할은 경영·영업상 비밀이라 공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선 직원들도 회사 차원의 별도 설명이나 공지는 없었고 특별한 경영상 변화도 체감하지 못한다고 전했습니다.
등기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요 경영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상법상 책임도 지지만, 미등기임원은 이사회 의결권이 없고 책임 구조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오너 경영인이 미등기 상태로 경영에 관여할 경우 실제 역할과 책임 범위를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등기이사는 상법상 책임을 부담하지만 미등기임원은 상법이 직접 규율하는 대상이 아니다"라며 "재직 중 문제는 상법상 책임이 될 수 있어도 사임 이후 사안에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는 "업무집행지시자 책임은 판례상 재벌 총수처럼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수준이어야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등기이사에서 물러나면 이후 사안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책임 주체에서 벗어난다"면서도 "미등기 회장이라도 중장기 전략경영계획 수립을 총괄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사실상 이사(De Facto Director) 또는 업무집행지시자로서 책임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차 회장은 지난해 급여 12억원·상여 12억4000만원 등 총 26억5700만원을 받아, 최윤성 부회장(13억2400만원)의 두 배 수준인 사내 최고 보수자였습니다.
차 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직함·상근·전략경영계획 수립 업무·최고 보수를 모두 유지하는 가운데 회사가 구체적 역할과 전환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토지신탁은 "회사는 행위자가 아닌 참고인일 뿐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고 있고 경영활동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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