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부동산 펀드가 소유한 대형 빌딩을 통째로 빌려 운영하는 ‘마스터리스(Master Lease)’ 시장에서 수탁기관의 경직된 자산 관리 방식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임대인인 금융기관이 10년 가까이 사용한 건물을 ‘신축 수준’으로 되돌려놓으라는 요구를 하면서, 우량 임차인 유치라는 펀드 본연의 운용 전략보다 보증금 공제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메타랩스와 그 계열사들이 한국증권금융을 상대로 24억원 규모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법정 분쟁 중입니다. 본래 이 사건은 메타랩스가 직접 건물을 지어 올린 뒤, 한국증권금융(수탁자) 측에 건물을 넘기면서 동시에 건물 전체를 다시 빌려 운영하는 '마스터리스(Master Lease)' 계약을 체결하며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임대인인 한국증권금융 측은 계약서상 조항을 근거로 '최초 준공 당시 수준'의 원상복구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대해 메타랩스 측은 10년 가까운 사용 기간에 따른 통상의 마모와 이미 새로운 임차인이 입주해 영업 중인 현실을 고려할 때, 신축급 복구 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며 맞섰습니다. 결국 보증금 24억원이 원상회복 미비를 이유로 묶이게 되면서, 양측은 조정 절차까지 거쳤으나 합의에 실패하고 본안 소송을 통한 법적 공방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갈등의 핵심은 마스터리스 계약 종료 시 ‘준공 당시 도면’을 기준으로 한 원상복구 요구가 자본시장의 합리적 관행에 부합하는지 여부입니다. 한국증권금융 측은 마스터리스 계약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펀드 자산의 퀄리티 유지를 위해 준공 시점과 동일한 수준의 복구가 약정된 사항”이라는 입장입니다. 수탁자로서 건물 가치를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계약 조건은 임차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워 자칫 공실 위험을 키울 수 있습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발생한 통상의 마모를 인정하지 않고 신축급 자재로 교체하라는 요구 등은 자산 운용의 상식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분쟁 대상이 된 공간 중 일부는 이미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와 수년째 영업 중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 임차인에게 전체 공간의 신축급 복구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부동산 금융 업계에서는 한국증권금융의 이 같은 태도가 오히려 펀드 운용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해당 자산의 신규 임차인 유치가 지연되는 등 공실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증금 반환 거부가 결과적으로 펀드 투자자(수익자)의 배당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향후 전문 기관의 감정을 통해 원상회복 범위의 적정성을 따지게 될 경우, 한국증권금융은 보증금 반환은 물론 지연 이자와 감정 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재무적 리스크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수탁자의 판단 미스가 펀드 자산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번 사례는 자본시장의 대등한 거래로 여겨졌던 마스터리스 계약 내 ‘원상회복 독소 조항’이 실무에서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상장사조차 보증금을 볼모로 과도한 공사비를 요구받는 구조라면, 향후 우량 기업들의 마스터리스 기피 현상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한 부동산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탁자의 과도한 권리 행사가 임차인과의 파트너십을 깨뜨리고 오피스 빌딩 생태계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계약서 문구에 매몰된 경직된 관리보다 감가상각을 고려한 합리적인 원상회복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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