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이 바꾼 산업지도)①‘에너지 안보’ 구원투수로 뜬 K원전
SMR, 대형 원전·재생e 한계 보완 ‘각광’
특별법 통과…올 민관 협력 확대 본격화
미·EU 상용화 경쟁…“전략기술 지정 필요”
2026-04-06 16:08:09 2026-04-06 16:38:28
중동 사태로 촉발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 폭등이 역설적으로 글로벌 시장의 탈탄소 시계를 앞당기며 ‘석유시대 종말’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명분에 머물던 친환경 및 대체 에너지 산업은 이제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안보와 경제성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글로벌 에너지 패권의 새로운 궤적을 그려가고 있는 대한민국 원전과 신재생, 배터리 산업의 현주소를 3회에 걸쳐 조명합니다._편집자
 
[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인공지능(AI) 시대의 본격화로 글로벌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겹치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한층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세계 에너지 체계를 떠받쳐온 석유 공급망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휘청이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을 둘러싼 각국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대안으로 소형모듈원전(SMR)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SMR은 대형 원전의 입지·건설 부담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기술로 평가받고 있으며, 중동 사태를 계기로 SMR 상용화 논의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북 경주시가 유치 추진 중인 혁신형 소형 모듈 원전(i-SMR) 1호기의 조감도.(사진=뉴시스)
 
SMR은 전기 출력 300메가와트(MWe) 이하의 소형 원자로로, 대형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힙니다. 대형 원전은 통상 건설에 최소 10~15년이 걸리고, 최소 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초기 투자와 부지 확보가 필요한 데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또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환경 변화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만큼,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SMR은 원자로와 주요 설비를 모듈 형태로 제작해 공장에서 생산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이라 공사 기간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건설 기간이 통상 5~7년 수준으로 대형 원전보다 짧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설계 특성상 사고 발생 시에도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 역시 강점으로 꼽힙니다. 아울러 대규모 전력을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게 공급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 SMR 분야 선도
 
국내에서는 정부의 제도 지원을 바탕으로,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사업 확대가 맞물리며 국내 SMR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서고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20년부터 약 4500억원을 투입해 혁신형 SMR(i-SMR) 개발을 주도해왔습니다. i-SMR은 올해 2월 표준설계인가를 신청하며 인허가 단계에 진입했고, 2035년 초도기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SMR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SMR 특별법)’까지 더해지면서 연구개발과 실증, 특구 지정, 인력양성, 국제협력 등을 포괄하는 국내 SMR 산업 육성의 제도적 기반도 본격적으로 마련됐습니다.
 
산업계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가 SMR 분야를 선도하고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원자력 기업 뉴스케일 파워, 테라파워, 엑스에너지 등과 잇달아 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SMR 사업 보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3년 뉴스케일 파워와 SMR 소재 계약을 체결을 시작으로, 지난해 12월에는 엑스에너지가 추진하는 Xe-100 16기에는 핵심 소재인 단조품 공급 계약을 맺었습니다. 올해부터는 테라파워의 미 와이오밍 345메가와트(MW)급 초도호기 프로젝트에서 핵심 주기기 3종 제작에 나설 계획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 경남 창원 본사 전경. (사진=두산에너빌리티)
 
회사는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창원 부지에 8068억원을 투입해 SMR 전용 공장 건설에 들어갔습니다. 2031년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SMR 기기 생산능력은 기존 12기에서 20기로 확대될 전망입니다.
 
HD현대는 부유식 원자력 발전선과 원자력 추진선 등 해상 응용 분야를 확대하며 조선과 원전의 접점을 넓히고 있습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2월 SMR 기술을 적용한 원자력 추진 컨테이너선 모델을 공개했고, 2030년까지 해상 원자력 사업 모델 개발 완료를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테라파워와 차세대 SMR 공동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중동 사태를 계기로 국내 SMR 연구개발과 상용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객원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사태 등을 거치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다”며 “이를 계기로 SMR 기술 개발과 상용화 분위기 형성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가전략기술 지정·세액 공제 필요”
 
다만 갈 길은 여전히 멉니다. 한국은 관련 특별법이 올해 2월에야 국회를 통과한 데다, 1호기 준공 시점이 2035년으로 잡혀 있는 등 여전히 후발주자에 머물러 있습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SMR을 둘러싼 지원과 상용화 경쟁이 본격화하는 분위기입니다.
 
글로벌 SMR 시장을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뉴스케일 파워는 지난해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77MWe급 SMR에 대한 표준설계승인을 받았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달링턴에서는 GE 버노바 히타치 원자력 에너지(GVH)가 SMR 건설에 착수해 2030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테라파워 역시 올해 3월 상업용 첨단원자로 건설 허가를 받았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소형모듈원자로(SMR) ‘스마트(SMART)’ 모형. (사진=한국원자력연구원)
 
유럽연합(EU)도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최근 중동 사태까지 겹치면서, 2020년대 초반 이어오던 탈원전 기조에서 점차 선회하는 모습입니다. EU는 2022년 7월 원자력을 EU의 친환경 투자 분류체계인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한 데 이어, 2024년에는 ‘넷제로산업법(NZIA)’을 제정해 인허가 간소화와 금융 지원, 인증 체계 정비 등을 추진해왔습니다. 특히 지난달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탈원전은 전략적 실수”라고 언급하며, 3억3000만유로(약 5740억원) 규모의 원자력 지원 패키지를 발표하고 SMR을 2030년대 초반 실전 배치를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아울러 SMR 개발 지원을 위한 2억유로(약 3400억원) 규모의 보증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SMR을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해 세액공제 등 법적 혜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장기투자 산업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단순 보조금보다 세액공제와 정책금융, 국가전략기술 지정 등 제도적 지원이 해당 산업 생태계를 육성할 더욱 실효적인 수단이라는 설명입니다.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원전 산업은 한번 투자하면 성과를 확인하기까지 대형 원전 기준 약 7년 이상이 소요된다”며 “특히 중소·중견 협력사 입장에서는 이 같은 장기 회수기간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만큼, 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 국가전략기술 지정과 세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산업화 자체보다 미국 현지 수출 과정에서 마주하는 각종 제약이 더 현실적인 문제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원전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는 “기술 개발, 생태계 육성 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현지 수출 가이드와 연계 지원사업을 함께 마련해, 해외 시장 진입까지 뒷받침할 수 있는 전주기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2편에서는 에너지 공급망 마비를 기폭제 삼아 글로벌 슈퍼사이클 중심에 선 국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업계의 약진과 미국·유럽 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주요 기업의 치열한 선점 전략을 살펴봅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