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송이에 부리를 대고 꿀을 빨고 있는 동박새
동백꽃이 피어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새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름도 동박새(Zosterops japonicus)일까요?
동박새는 참새보다 작은 몸, 연한 녹색 깃, 등부터 옆구리에 걸쳐 연둣빛, 배는 회색빛 도는 어두운 갈색, 그리고 중요한 외형상의 특징으로 눈 둘레를 감싼 흰 테가 있습니다. 하얀 뿔테안경을 쓴 것처럼 보이는 동박새 눈가의 흰 테두리는 이 새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동박새의 흰 눈 테두리는 흥미롭게도 학명에서부터 다양한 국가에서 이 새를 부르는 이름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학명의 속명 조스테롭스(Zosterops)는 그리스어 어근을 바탕으로 만든 말로, '고리가 있는 눈'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메지로(目白, めじろ), '흰 눈'이라는 뜻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씨우옌니아오 '눈가에 수놓은 새'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동박새 눈가의 '하얀색'은 매우 강렬한 특징으로, 각 국가에서 새를 부르는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동박새라 부릅니다. 아마 눈가의 하얀 테두리보다 동백꽃과 만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동백꽃 대신 매화와 함께 있는 모습을 가장 먼저 만났다면, 매화 새라고 불렸을지 모릅니다. 실제로 동박새는 동백꽃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겨울이 끝자락 봄이 시작하며 피어나는 벚나무, 매실나무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동박새는 혀끝에 붓 모양의 돌기가 있어 꽃 안쪽 깊숙한 꿀을 빨아내기에 능하며, 달콤한 꿀을 채집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꽃과 꽃을 옮겨 다닙니다.
송휘종 조길의 매화수안도
꽃 사이를 오가는 동안 동박새는 꿀을 얻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꽃을 피우는 나무들의 꽃가루받이를 돕습니다. 동백꽃 피어나는 시기는 나비와 벌들과 같이 수정을 도와주는 존재들이 적음에도, 동백나무가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가 동박새 덕분이랄까요 동박새와 동백나무는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공진화의 동반자인 셈이죠.
중국 북송의 8대 황제 송휘종 조길(1082-1135)은 동박새와 매화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오늘날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매화수안도>입니다. 성기게 핀 하얀 매화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동박새를 묘사한 이 그림에서 한 가지 생태적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화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다른 꽃들보다 먼저 피어납니다.
그 곁에서 동박새는 꿀을 채집하고, 몸에 꽃가루를 묻혀 옮겨주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덕분에 매화는 수정을 통해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려, 이듬해에도 매화가 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조길의 작품은 추위가 여전한 때에도 매실나무와 동박새가 공생공락하는 장면을 화폭으로 담아낸 900년 전 기록이자, 생태학적으로도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동박새는 한반도에서 난온대 기후 지역의 연안 상록수림을 터전으로 삼는 새로, 남해안 일원과 울릉도, 제주도에서는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텃새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반도 북쪽에서도 관찰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14일 열린 '탐조문화 발전을 위한 500인 워크숍'에서는 이 변화가 보다 구체적인 데이터로 제시되었습니다.
시민과학 플랫폼 네이처링에서 축적된 조류 관찰 자료를 분석한 강홍구 대표는, 동박새의 분포가 도감에 기재된 남부 지역의 범위를 훌쩍 넘어 수도권 일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공유했습니다. 겨울이 예전보다 덜 추워지면서 동박새가 살아갈 수 있는 기후 조건이 점차 북상한 데다, 공원과 가로수 등 도심 곳곳의 녹지가 안전한 쉼터와 풍부한 먹이원이 되어 준 것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동백꽃이 지나 매화가 피고,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동백에서 매화로, 매화에서 벚꽃으로, 겨울의 붉은 꽃 곁에서 노래하던 새는 어느새 봄의 연분홍 속으로 날아들고 있습니다. 오늘도 봄의 꽃들이 피어날 수 있는 데에는, 동박새들의 부지런함도 한몫이 있습니다.
글·사진= 김용재 생태칼럼리스트 K-wild@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