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6·3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가 지연·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까지 이어지며 후폭풍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여야는 국정조사 추진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검경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한 데 이어 특검 도입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봉권 띠지 폐기 의혹 당시 국정조사와 상설특검까지 가동했지만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해 불기소 처분으로 끝난 전례가 있습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번 사태 역시 선관위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는 결국 '고의성 입증'이라는 같은 벽 앞에 서 있습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봉쇄 시위를 이어가는 시민들이 지난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설치된 개표소 앞에서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8일 국회가 직접 나섰습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날 각각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사무처 의안과에 제출했습니다. 다만 민주당은 국정조사 후 특검·개헌을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특검이 우선이라며 방향은 엇갈리고 있습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대통령은 지난 7일 "검찰과 경찰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할 것을 지시했다"고 알렸습니다. 대검찰청은 즉각 "신속하게 검경 합수본을 구성하고 경찰과 긴밀히 협력해 의혹을 엄정히 규명하겠다"고 응했고, 서울경찰청은 이미 시민단체의 고발 사건을 광역범죄수사대에 배당해 이날 고발인 조사까지 착수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합수본 수사에 국정조사·특검까지 더해지는 '3중 트랙' 구도가 형성됐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미 유사한 전례인 관봉권 띠지 폐기 사건을 떠올리는 시각도 나옵니다. 2024년 12월 서울남부지검이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5000만원어치 관봉권의 띠지·스티커가 보관 중 사라지면서 검찰의 고의적인 증거 인멸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여권의 수사 압박 속에 대검 감찰에 이어 국정조사, 상설특검까지 차례로 가동됐습니다. 그러나 65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90일을 파고든 특검의 결론도 "의도적으로 훼손·폐기하고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특검이 사건을 검찰에 이첩한 뒤 추가 수사를 이어간 남부지검은 지난 5일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남부지검이 스스로 종결한 '셀프 무혐의' 처분이라는 비판도 뒤따랐습니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며 개표소 봉쇄 시위를 이어가는 시민들이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설치된 개표소 앞에서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핵심은 역시 고의성입니다. 형법 제122조(직무유기)는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한 경우를 처벌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단순 과실이나 태만이 아닌 '의도적 방기'를 요구합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의 자유방해죄(제237조)도 거론되지만 투표권 행사 방해에 대한 고의가 있었는지가 마찬가지로 쟁점입니다.
합수본이 고의성을 입증하려면 세 가지 지점을 뚫어야 합니다. 먼저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기존 선거인 수의 60%에서 50%로 낮춘 지침 변경의 최종 결재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선관위는 2022년 한국행정연구원 용역 보고서의 권고를 참고했다고 밝혔지만, 이 권고를 누가 언제 어떤 판단으로 채택했는지가 핵심입니다. 다음으로 예산과 실제 인쇄량의 괴리입니다. 선관위는 유권자 수의 110%에 해당하는 인쇄 예산을 확보하고도 실제 인쇄량은 50% 수준으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일 대응 타임라인입니다. 용지 부족 상황에서도 선관위 스스로 인정했듯 현장 대응 절차조차 없었던 가운데, 중앙선관위-서울시선관위-현장 간 보고 체계에서 대응 공백이 의도적이었는지 여부가 수사 대상이 됩니다.
이 세 가지에서 "알고도 안 했다"는 정황이 나와야 직무유기죄 성립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3중 트랙을 가동해도 관봉권 사건처럼 "단순 과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법조계의 우려입니다. 김필성 변호사는 이날 통화에서 "형사법은 객관적으로 잘못한 게 명백하더라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업무를 태만하게 하거나 엉망으로 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처벌할 규정이 마땅치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60%에서 50%로 낮추자고 결정한 사람들이나 용지 부족을 인지하고도 대응하지 못한 경위가 단순 업무 실수라면 업무 태만으로 가는 것이고, 정말 선거를 망칠 목적이나 고의적 의도가 있었다는 걸 입증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겁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관봉권 사건도 국정조사하고 특검까지 했지만 고의성 입증이 안 됐는데 이번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며 "사안이 중대하니 수사는 해볼 수 있겠지만 특검까지 할 사항인지는 애매하다"고 말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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