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다가 포로가 된 북한군의 송환 문제와 비무장지대(DMZ)의 지뢰로 우리 군인들이 부상한 사건을 접하며 전쟁의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남북한 군인들이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전쟁의 여파와 군사적 긴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하지 않는 전쟁에 휘말리거나 신체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은 한반도의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일깨운다.
홍대입구 근처, 카톨릭 청소년센터에서 통일부가 후원하고 통일 문제를 논의하는 숙의토론에 참여해 통일 전문가들의 발제를 듣고 조별 토론에 참여했다. 북한을 적대와 극복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 존중과 협력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가 주요 쟁점이었다. 조원들의 다양한 의견 속에서도 우리 조가 통일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서 공통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평화’였다. 우리의 논의는 상당히 현실적이고 솔직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결코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며, 오랜 시간 쌓아 온 경제적 발전과 문화적 성취를 위협받고 싶지도 않다.”였다.
토론과 자료집 발제를 읽으며 북한의 변화도 새롭게 살펴보게 됐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만 해도 한반도에는 화해와 협력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2023년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 북한은 2023년 헌법에 핵무력 강화 정책을 명문화했고, 이후 통일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영토 조항을 신설했다. 남한을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부르고, 하나의 민족이라는 관점보다 별개의 적대적 국가임을 앞세우고 있다. 핵무력을 국가 안보의 핵심 수단으로 하고, 통일을 지향하던 데서 두 개의 적대국임을 강조한다는 점은 분명히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1987년 개정된 헌법의 통일 지향적 틀은 유지되고 있지만, 북한이 남북관계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는 상황에서 우리 역시 기존의 통일 원칙을 현실에 맞게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북한이 설정한 일방적인 틀에 우리가 끌려가면서 주도권을 잃는 것은 아닌지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거나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표와 원칙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것이다.
세계 질서 역시 변화하고 있다. 여러 중심 국가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다극화의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한국 외교도 특정한 관계에만 의존하기보다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고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키워야 한다. 국익과 평화라는 기준에 따라 사안별로 협력하고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외교적 중심을 세우자는 것이다.
한국은 경제와 기술, 문화와 산업에서 국제적 위상이 커졌다. 그에 따라 국제사회가 한국에 기대하는 역할도 커지고 있다. 방위산업의 발전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우리의 미래를 무기 수출이나 군사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군사적 억지력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평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역량은 갈등 속에서 어느 편에 설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갈등을 줄이고 대화의 통로를 만드는 능력으로도 평가받아야 한다.
평화를 최우선 국가전략으로 삼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최근 이란 전쟁과 관련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현실의 외교·안보적 선택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었다. 평화 우선의 국가전략은 국제사회의 책임을 외면하거나 안보 현실을 무시하자는 뜻이 아니다. 평화는 선언에 머무는 이상이 아니라, 국가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무엇을 우선하고 어떤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인지 판단하는 실질적인 기준이어야 한다.
이제 평화를 최우선 국가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동북아에서 군사적 대립을 완화하고 대화와 협력의 공간을 만드는 데 한국이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적대의 현실을 직시하되 평화의 가능성까지 닫아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평화를 통해 우리의 발전과 문화를 지키고 미래 세대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