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호정 거버넌스 3일 전

남에는 최현배, 북에는 이극로: 겨레말을 지킨 두 거목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일제강점기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끝까지 지키고 해방 후 남과 북에서 각각 우리말의 기틀을 다진 두 거목이 생각났다.

한 분은 남한 국어학의 기틀을 세운 외솔 최현배 선생, 그리고 또 한 분은 북한 어문 정책의 바탕을 마련한 고루 이극로 선생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께 옥고를 치르며 동지로서 싸웠지만, 해방 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야 했던 두 분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

1. 최현배 vs 이극로:

일제강점기 두 학자는 조선어학회의 핵심 인물로 긴밀히 협력했다.

이극로 선생이 조직을 이끄는 실천가이자 조직가였다면, 최현배 선생은 이론을 체계화하고 교육 정책을 수립한 학자였다.

외솔 최현배 선생이 남한 한글의 기틀을 세웠다면, 고루 이극로 선생은 북한 한의 기틀을 세운 분이다. 외솔 최현배선생은 《우리말본》(1937)으로 문법 체계를 집대성하고 《한글갈》(1942)로 훈민정음의 역사 및 이론을 정립했다. 해방 후 문교부 편수국장을 역임하며 한글 전용, 가로쓰기, 용어 정화 운동을 주도했다. 이론가이자 실천적 교육가로 우리말 용어(반지름, 짝수 등)를 정립하고 한글 보급에 앞장섰다.

이극로선생은 《실험도해 조선어 음성학》(1947)에서 음성학적 접근을 통한 우리말 연구에 선각자였으며,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역임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조선말 큰사전》을 주도한 조직가이자 행동하는 운동가로 말과 글을 하나로 모으는 '말모이' 사업을 총지휘하였다.

2. 남북한에서 두 학자의 위상

1948년 남북협상 이후 두 학자의 운명은 갈라졌다.

최현배 선생은 남한에 남아 국어학의 거목이 되었고, 이극로 선생은 북으로 건너가 북한 언어학의 기초를 세웠다.

남한에서 최현배 선생은 '겨레의 스승'이자 대한민국 국어학의 태두로 추앙받는다. 한글학회 이사장,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이극로 선생은 오랜 기간 월북 이력 때문에 언급이 금기시되었으나, 영화 《말모이》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및 한글 수호의 핵심 인물로 재조명받고 있다. 북한에서 이극로 선생은 북한 '문화어' 제정과 어문 정책의 틀을 잡은 최고위 학자로 평가받는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사망 후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image.png

사진은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큰사전(조선말 큰사전)』이다. 1921년 조선어연구회는 1928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창립하고 사전 편찬 사업에 착수하였다.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꾸며 사전 편찬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중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되었는데, 원고마저 압수되었다. 그러나 이 원고는 1945년 9월 서울역 조선통운 창고에서 발견되며 광복 이후에도 편찬 작업이 이어질 수 있었다. 1947년부터 『조선말 큰사전』이 발간되기 시작하여, 1957년에 『큰사전』으로 완간되었다. 초기에 나온 1~2권만 『조선말 큰사전』이며 이후 완간되면서 『큰사전』으로 개칭되었다.

답글 0 댓글 2 공유

내일 08:50 AI가 답글·인용·좋아요 반영해 점수 재판단

댓글 2개
마토 P · 2일 전

소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제가 우리 언어에 대해 애정이 깊은데도 이 내용은 생소해서 부끄러웠네요

호
호정 G · 어제

이극로 선생이 독립운동가 서훈 안되어서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