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글로벌 ‘인공지능(AI) 거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4박 5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9일 오전 한국을 떠났습니다. 닷새 동안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며 AI 생태계 구축에 매진한 황 CEO의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 기업들은 엔비디아와 전방위적 협력으로 글로벌 AI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엔비디아와 협력 체계를 공고히 하는 데 따라 의존도가 높아지는 불가피한 양면성은 한국 산업계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떠오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 일정을 마친 뒤 9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기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며 엄지척을 날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황 CEO는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C)에서 한국을 떠나기 전 취재진과 만나 “매우 좋은 미팅을 가졌고, 매우 좋은 파트너십도 발표했다”며 “SK하이닉스와 사업 확장 및 협력 다각화를 위한 다년간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네이버·SK텔레콤과도 각각 AI 클라우드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성과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한 가장 큰 기여는 AI 산업을 만들고 AI 생태계를 창출한 것”이라며 “우리의 기술 없이는 이런 첨단 슈퍼컴퓨터를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이제 훌륭한 파트너십을 맺었으니 함께 이 산업을 키워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엔비디아라는 제국 없이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읽힙니다.
황 CEO의 이번 방한의 핵심 목적은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반기에 본격 출하될 차세대 AI 플랫폼 ‘베라 루빈’에 탑재될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안정적인 확보와 ‘AI 팩토리’로 대변되는 엔비디아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입니다. 이는 황 CEO의 닷새 간의 ‘광폭 행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황 CEO는 방한 기간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을 비롯해 두산, 네이버, 업스테이지 등 기업들을 두루 만나 ‘AI 동맹’을 다졌습니다. 삼성과 SK와는 HBM 확보 논의를, 나머지 기업들과는 ‘AI 팩토리’ 구축과 파생되는 피지컬 AI 협력 등이 골자입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 핵심 고객사이자 공급사이기도 한 엔비디아와 끈끈한 ‘AI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입니다. 글로벌 AI 시장을 선도하는 엔비디아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한국 기업이 글로벌 AI 시장 진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도 긍정적입니다. 엔비디아를 등에 업은 한국 기업의 ‘AI 기술’과 ‘생산능력’은 차세대 피지컬 AI 시장 주도권을 쥐기에 충분한 까닭입니다.
황 CEO 역시 이에 못지않은 ‘실리’를 챙겼습니다. 단순 HBM의 안정적인 확보를 넘어 엔비디아 중심의 AI 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면서 자사 플랫폼의 ‘저변’을 넓혔다는 평가입니다. 황 CEO가 입국 당시 언급한 ‘4가지 큰 선물’도 엔비디아의 핵심 제품군(베라 루빈, 베라 중앙처리장치(CPU), AI 노트북 ‘RTX 스파크’, AI 엣지 슈퍼컴퓨터 ‘젯슨 토르’)이라는 점에서 이번 방문을 자사 제품 및 플랫폼 세일즈 전략의 일환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황 CEO의 방한 목적은 반도체 공급망 점검에 더해 자사의 플랫폼을 한국 기업들에 세일즈하기 위한 성격도 짙은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가 큰 수혜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습니다.
실제 이번 방한 동안 한국 기업들이 맺은 AI 협력은 대부분 엔비디아 소프트웨어나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쿠다-X’ 라이브러리와 피직스네모를 활용해 반도체 설계·제조 시뮬레이션 가속화를, LG전자는 엔비디아의 ‘아이작 그루트’ 생태계를 기반으로 하는 로봇 공동 개발, 두산로보틱스는 ‘아이작 심’, ‘아이작 랩’ 등의 엔비디아 오픈 라이브러리를 활용한 로봇 운영체제(OS) 개발 등의 협력을 발표했습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입니다. 엔비디아 생태계의 이점을 최대한 누리되 ‘기술 의존’을 최소화하는 것이 한국 산업계에 또 다른 과제로 남았습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AI와 관련한 여러 모델을 개발하고 일부 현장에 적용하고 있긴 하지만, 성능 부분에서 현재 엔비디아 플랫폼과 경쟁하기는 어렵다”며 “종속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불가피한 상황으로, 오히려 엔비디아 플랫폼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추가 기술 확보를 통해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 등으로 실리를 꾀하는 전략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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