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개월 가까이 멈춰 섰던 국내 재계 13위 KT그룹의 경영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리더십 출범 이후 조직 개편과 그룹 인사가 빠르게 이어지며 정상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 경영 공백을 딛고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늦었지만 의미 있는 출발이다. 다만 회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과 별개로, 내부에 남아 있는 구조적 문제까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장 큰 숙제는 이사회다. KT 이사회는 현재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7명 구조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번 정기 주주총회에서 3명의 사외이사가 교체됐다. 변화의 신호가 나타나기는 했지만 일부 인적 교체에 그칠 뿐, 이사회 운영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간 누적돼 온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여전하다.
특히 이사회 권한이 과도하게 확대되며 전형적인 '옥상옥' 구조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KT 이사회는 부문장급 임원 인사와 주요 조직 개편까지 사전 심의 대상에 포함시키며 영향력을 넓혀온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감시·감독이라는 본래 역할을 넘어 경영의 세부 영역까지 개입하는 수준으로, 결과적으로 경영진의 자율성을 위축시키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
사외이사 중심의 폐쇄적 운영 방식은 이 같은 구조를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 사외이사가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평가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셀프 연임 논란이 이어졌고, 외부 경쟁보다는 내부 네트워크 중심의 재선임이 이뤄지며 이사회가 점차 폐쇄적인 집단으로 굳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사외이사는 타 기업 이사회와의 겸직 문제, 특히 현대제철 사외이사 겸임 이슈로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였고, 특정 인사를 둘러싼 투자·인사 관련 의혹까지 제기되며 결국 노조 고발과 수사로 이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 간 불균형이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통제에서는 자유로운 모습이 반복되면서 '감시받지 않는 권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주주총회 현장에서도 "이사회 전횡으로 경영이 흔들렸다", "이사회가 카르텔로 변질됐다"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제기됐지만, 이에 대한 이사회의 대응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김용헌 이사회 의장이 "주주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읽히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KT는 한때 국내 지배구조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았던 기업이다. 2002년 민영화 직후, 특정 대주주가 없는 소유 분산 기업 구조 속에서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시도로, 경영 견제와 균형을 제도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평가됐다. 옛 체신부 통신망을 기반으로 성장하며 국가 기간통신 인프라를 담당해 온 기업이라는 점에서, 공공성과 책임을 반영한 지배구조 설계라는 의미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KT 이사회는 그 출발점과는 다른 모습이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래 취지는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투명성은 폐쇄적 구조로 변질됐다. 과거 "국내 대기업 최초로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다"고 강조했던 KT의 상징성 역시 현재의 운영 방식과는 괴리가 크다. 지배구조는 제도가 아니라 실제 작동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지금의 KT 이사회는 재점검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리더십이 출범한 지금, 변화는 조직 개편에 그쳐서는 안 된다. KT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산업 내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역시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는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리더십은 바뀌었다. 이제 바뀌어야 할 것은 이사회다.
이지은 테크지식산업부 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충범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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