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AI 시대, 멈추지 말아야 할 질문
2026-04-06 06:00:00 2026-04-06 06:00:00
실리콘밸리의 일부 기술 엘리트들은 민주주의가 너무 느리다고 말한다. 선거는 비효율적이고 의회는 더디며 합의 과정은 낭비라는 것이다. 소위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그룹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사회 전체를 시스템화하는 ‘기술 공화국’의 비전이 조용히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을 선망하는 젊은 세대들도 제법 많다. 
 
이 비전의 핵심 구조는 단순하다. 극소수의 기술 엘리트 0.1%가 AI와 로봇을 독점해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잃은 대다수는 국가나 기업이 걷어 나눠 주는 기본소득(UBI)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도 굶주리지 않는다. 겉보기엔 평화롭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섬뜩한 통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기술주의자들은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이 각자의 취미와 여가를 즐기며 살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중대한 오판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떠올려보라. 주인이 때맞춰 주는 사료를 먹으며 안락한 우리 안에서 뒹구는 가축처럼 인간 역시 시스템이 던져주는 기본소득과 가상현실(VR)이 제공하는 말초적 엔터테인먼트에 갇혀버릴 수 있다. 삶의 뚜렷한 목적과 가치 있는 노동 없이 배급에만 의존해 쾌락을 소비하는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인가.
 
노동은 단순히 밥벌이가 아니다. 노동은 자기를 세계와 접촉시키는 행동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고 돌보는 행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한다. 그 과정이 때로 고통스럽더라도 그 고통 속에 성장이 있고 의미가 있다. 노동의 종말이 곧 고통의 종말을 뜻한다는 믿음은, 인간을 쾌락과 고통의 총합으로만 보는 공리주의적 환원에 불과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민주주의의 침식이다. AI 시대 기술 독과점 체제는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장악한 소수가 여론을 설계하고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사회 전체의 규칙을 만들어낼 때 1인 1표의 원칙은 형식적 껍데기로 남는다.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술 엘리트주의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평등한 참여와 분산된 권력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수행하는 노동은 가사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AI 로봇이 빨래를 바구니에 넣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AI와 로봇이 창출하는 생산성을 독점이 아닌 공유의 방식으로 재분배하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기본소득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통제의 수단이 아니라 자유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기본소득 위에서 사람들이 더 의미 있는 노동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선택지를 다양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의 책임이다.
 
AI 기술에 대한 민주적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 알고리즘의 설계와 데이터의 이용이 소수 기업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한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의 새로운 주권 논의다. 기술 민주주의는 기술 공화국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인간 고유의 내면 역량을 키우는 교육과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 예술, 돌봄, 공동체적 연대. AI 시대에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값진 것이 될 수 있다. 편안한 우리 안에 갇히지 않으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야말로 AI 시대 민주주의를 지키는 첫 번째 행동이다.
 
백승권 비즈라이팅 강사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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