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뉴스토마토 강석영·정주현 기자] 이재명 대통령 '쪼개기 후원' 의혹을 뒷받침한 핵심 증거인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진술이 뒤집혔습니다. 김 전 회장은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했던 증언을 번복하면서, 그 배경으로 검찰의 '압박 수사'를 지목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검찰의 인질이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수원지법 형사11부(재판장 송병훈)는 지난 8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에 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습니다. 피고인인 이 전 부지사 신청에 따라 이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됩니다. 이날 오전엔 배심원단 12명(예비 배심원 5명 포함)이 선정됐고, 오후부터 첫 쟁점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심리가 시작됐습니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 4월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지난 2018년 7회 지방선거(경기도지사)와 2021년 20대 대선 경선에 출마한 이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김 전 회장에게 '쪼개기 후원'을 사주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이 쌍방울그룹 임직원과 가족 명의를 동원해 소액으로 나누어 후원하는 방식으로 1인당 후원금 한도를 초과해 기부했다는 시각입니다.
물증 없는 '쪼개기 후원' 의혹…유일한 증거는 '김성태 진술'
쟁점은 이 전 부지사가 김 전 회장에게 이런 불법 후원을 실제로 지시하거나 사주했는지 여부입니다. 현재 검찰이 확보한 직접증거는 김 전 회장을 비롯한 쌍방울그룹 관계자들의 진술이 유일합니다. 이를 뒷받침할 녹취록이나 문자메시지 등 객관적인 물증은 없는 상태입니다.
이 전 부지사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 땐 혐의를 인정했었습니다. 이 전 부지사의 연관성은 물론 이 대통령 역시 쪼개기 후원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날 김 전 회장에 대한 증인신문 시간을 30분 안팎으로 짧게 잡고, 기존 검찰 진술 조서의 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으로 신문을 끝내려 했습니다.
30분 예상된 '신문' 흔든 변수…김성태 "기억 안 난다" 발 빼
그러나 법정에 선 김 전 회장의 증언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게 부탁을 받아 후원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전 부지사가 후원금 한도를 피하기 위한 구체적 후원 방식까지 지시했느냐'는 질문엔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전 부지사를 통해 이 대통령이 고맙다고 전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의 기존 진술에 대해서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발을 뺐습니다.
당황한 검찰이 재차 확인했지만 김 전 회장의 진술은 같았습니다. 김 전 회장은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 "검찰에 인질로 많이 잡혀 협조해 준 차원", "여러 일로 몸도 마음도 지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검찰이 '허위 진술시켰다는 거냐'고 따져묻자 그는 "주변 사람들 다 구속하고 이런 저런 의혹을 물어보면 말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습니다.
검찰 "불법 사주 시켰다" 대 이화영 측 "유력주자 향한 보험"
검찰의 공소사실이 흔들리면서 양측 공방은 치열해졌습니다. 검찰은 "쌍방울 임직원과 가족들이 1인 한도액에 맞춰 일괄적으로 이 대통령에게 후원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이 전 부지사가 아니면 김 전 회장이 처벌을 감수하고 후원할 이유가 있겠느냐"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이 전 부지사 측은 "김 전 회장은 후원 당시 이스타항공 인수, 라임 사태 연루 의혹 등으로 문제가 있었다"며 "이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고 소위 보험을 들어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날 국민참여재판은 오전 9시30분 배심원단 선정을 시작으로 밤 1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습니다. 검찰과 이 전 부지사 측 변호인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의 눈높이에 맞춰 복잡한 법적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검찰은 파워포인트(PPT) 등 시각 자료를 활용해 이 전 부지사와 이 대통령의 긴밀한 친분 관계, 쌍방울 관계자들의 일괄적 소액 후원 정황을 부각했습니다.
이 부지사 측 변호인은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법원 격언을 강조하면서 증거재판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 등 형사소송법 대원칙을 강조했습니다. 양측 모두 배심원석 가까이에서 배심원단과 눈을 맞추며 변론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밤 11시까지 이어진 '국참 변론'…배심원단 평결은 오는 19일
12명의 배심원단 역시 장시간 재판에 따른 피로 속에서도 양측 주장에 귀 기울였습니다. 검사와 변호인 변론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필기구로 적기도 했습니다. 화면에 제시되는 피의자 신문조서를 읽기 위해 상체를 길게 빼기도 하고, 김 전 회장 증인신문 땐 질문자와 함께 신문서를 넘기거나 김 전 회장 표정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첫 째날 심리를 마친 후 이후 배심원단을 향해 "관련 보도를 찾아보거나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눠선 안 된다"고 안내했습니다. 국민참여재판법에 따르면, 배심원단은 평의가 시작되기 전 사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거나 의논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됩니다. 재판부는 오는 19일 배심원단의 평결을 참조해 선고를 내릴 예정입니다.
경기 수원=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경기 수원=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